전면적인 압박은 정치적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잘못된 방침이다 0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번역해 봤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런저런 번역들이 있긴 하나, 번역한 게 아까워서 그냥 업로드한다. 


10년 전 이슬람 정당들은 중동에서 막을 수 없는 힘이었다. 2011년 아랍의 봉기 때 독재자들은 흔들렸고 무슬림 형제단과 그 후계자들은 영향력을 얻었으며 통제력을 획득했다. 모스크와 투표함은 궁전과 병영, 힘의 근원으로서 비밀경찰을 대체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랍세계의 잔해 속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민주주의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념은, 부서졌다. 이슬람 정당들은 반동적 체제로서 새로운 것을 억눌렀고 폭력적인 지하디스트와 그들이 실패했다는 의심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투표자들로 인해 도전받았다. 대부분은 투옥되거나 추방됐다. 그들의 자금주, 카타르는 트럼프가 지지하는 주변 아랍국가들의 외교적이고 경제적인 외면에 종속되고 말았다.

이슬람 단체는 여러 형태로 파생됐다. 나흐다 당부터, 무슬림 민주주의자라고 자칭하는 튀니지인이 있고, 팔레스타인에는 이슬람 자살 폭탄를 보내는 하마스가 있다. 이렇게 나타나는 단체들은 모두 3가지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비민주적이다. 그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은 모두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독재자에 문제해결을 이관한다.

성찰로부터 출발하자. 정치 평론가들은 정치적 이슬람주의자들이 알카에다나 IS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두 종류의 이슬람 모두 샤리아 하의 이슬람 칼리프 제를 재창안하려고 했다. 최악은 정치적 이슬람이 폭력적인 지하드의 입구라는 점이다.

형제단은 부분적으로 구별을 흐리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형제단의 지도자들은 영어로 비폭력을 설교하고,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아랍세계의 성전과 저항을 찬양한다. 이와 비슷하게 이집트 정부에 저항하는 폭력은 형제단의 작품으로 나타난다.

이 모든 그룹이 뭉치게 되는 것은 간단하다. 폭력적인 지하디스트들은 유혈 행위를 정당화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청교도적인 살라피즘조차 예외는 아니다. 지하디스트들은 연민, SNS, 선거에 집중하는 온건파 이슬람주의자를 혐오한다. 그들은 인간의 법보다 성스러운 법이 우선한다고 본다.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심지어 비폭력적인 이슬람주의자조차도 선거를 전략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터키의 대통령인 에드로안은 이슬람주의자의 모델이었는데 그는 독실했고 또 개혁에 개방적이었다. 요즘에 그는 현실과 가상의 적 모두를 몰아내고 아랍세계의 최악의 지도자가 되었다. 평론가는 에드로안과 무르시 모두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슬람주의자이기 떄문이다. 그러나 거기엔 또 다른 설명이 있다. 그들은 터키와 이집트의 독재자가 건력을 돌려받기 위해 사용했던 계엄령이라는 권력 획득 전략을 활용한다.

희망적인 예는 아랍의 봄이 시작한 튀니지에 있다. 그 곳은 리비아의 시민전쟁과 이집트와 알제리의 비밀경찰 모두를 피할 수 있었다. 나흐다 당은 권력을 더욱 세속적인 이들과 나눌만한 상식이 있었다. 이는 나약한 민주적 번역이 더 큰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모로코에서 왕은 권력을 의회에 이양했고 이슬람 수상이 연정을 구성하는 것을 인정했다.

세 번째 오류로 생각할 만한 것은 국가로 하여금 절대왕정과 종신 대통령제에 의존하게 하는 정치적 이슬람의 결점이다. 그들의 기록은 심각하다. 1979년의 혁명을 촉발시킨 샤의 철권통치부터, 이라크에서의 사담 후세인의 공포정치, 1992년 알제리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의 선거 승리를 뒤집은 쿠데타, 시라아의 알사드 정부까지, 억압은 최선의 결과로 부서지기 쉬운 안전성과 최악의 결과로 시민전쟁을 안겨줬다. 남한과 대만과는 다르게 중동의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지속적인 번영을 낳는 데 실패헀다.

 

시시도 아니고 IS도 아닌


무르시의 정부를 전복한 지 4년 후에, 그는 그 자신이 축출한 시시보다 더 최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현재 대통령은 현대 이집트 사에서 최악의 대량 학살을 자행했고, 2013년에는 무르시의 지지자 1300여명을 학살했다. 국가는 무라바크 때보다 더 억압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지하디스트 폭동은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시시는 이집트의 늘어나는 청년 인구를 위해 창조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억압과 실정은 아랍 세계에 위기의 장면을 연출했다. 그들은 금방 절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재는 막다른 길에 접어들었다. 안 좋은 선택 가운데, 유일한 탈출구는 아랍의 경제와 정치를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건 폭력을 포기하고 민주적 규범을 존중하는 한에서 이데올로기가 경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은 이슬람주의자들은 포함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중동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것이 놓인 신의 장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정하는 정치학에서는, 정치적 이슬람주의자들은 매우 드물게 아랍 세계의 기독교 민주당원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실용적으로 변할 수 있고, 무시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과 부딪혀야 하는데, 연합해야 한다. 그들을 급진화하기보다는,온건파와 같이 일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아주 불쾌한 개혁을 요구할 수도 있고, 대부분의 위험과도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은 지하디즘의 통로가 아니라 그들을 막는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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