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해적단과 한국 영화 평론에 관한 생각 0






어떤 영화를 비판하려면, 특히 그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면,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 맞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사안과 그 사안에 관련된 당사자들을 감안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아트시네마에서 <밤섬해적단>을 본 후에 <밤섬해적단>을 비판하는 짧은 글을 썼다. 괜한 글을 썼다고 생각하다가 씨네21에 실린 김소희 영화평론가의 <밤섬해적단> 평문을 읽고 나서 생각을 고쳤다. <밤섬해적단>에 대한 본격적인 평문을 읽기 전에, 나는 <밤섬해적단>이 보여주는 과시적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관련된 평문 대부분이 영화 자체보다는 밤섬해적단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대로 김소희 평론가는 그들의 노래, 그들의 언어, 그들의 태도를 비평적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나는 이것이 평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다루는 평문이 겪는 딜레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해양 생물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다고 하자. 이 가상의 다큐멘터리는 해양생물학자의 관점에 근거하여 해양생물에 관한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세밀하게 과학자의 시선을 문자 그대로 따라가는 이 가상의 다큐멘터리는 과학 논문의 시청각적 번안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이 다큐멘터리는 과학자의 관점, 그의 설명 방식과 차별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실제 사건의 개요와 대상의 묘사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다큐멘터리는 스스로의 존립 근거를 잃는 딜레마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밤섬해적단> 역시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밤섬해적단>의 형식을 새롭다고 표현하는 관점에는 더욱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정신없는 타이포그래피에 있다는 점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기에 <밤섬해적단>의 타이포그래피는 밤섬해적단의 가사를 관객이 이해되기 쉽도록 충실히 전하거나 남한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풍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엉성한 형식을 보완하는 보충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인 나도 영화를 보자마자 영화의 씬을 어림짐작으로 구성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밤섬해적단의 팬이고 그들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켜본 까닭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영화는 밤섬 해적단이 겪는 일련의 사건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영화의 형식이 도드라지지 않으며, 영화가 드러내는 입장도 명확하지 않다. 이를 숨기기 위해 정신없는 타이포그래피를 삽입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밤섬해적단>은 복잡한 구조를 지닌 것도 아니고 특정한 가치판단을 근거로 어떤 입장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엉성한 음악을 하고 입장이 없는 밤섬해적단을 영화적으로 번안한 것이기 때문에 영화가 허술하고 형편없다고 반박한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못 만든 영화를 왜 옹호해야 하는가? <밤섬해적단>이 정치적 대의를 방어하는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이와 비슷한 측면에서 <밤섬해적단>을 옹호하는 논리로는 계도의 동어반복 논리가 있을 수 있다. 그 논리에 따르면, <밤섬해적단>은 현대 예술이라서, 혹은 펑크 음악을 소재로 삼고 있어서, 국가 보안법을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영화다. 문제는 이 영화를 비판한 내가 현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라인드 코어나 펑크 음악에 반감이 있는 꼰대, 국가 보안법에 찬성하는 보수 우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오명을 떠안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내가 <밤섬해적단>에 숨어있는 관점과 형식을 보지 못했다면 이를 찬찬히 설명하는 평문을 읽어 보고 싶다. 
소위 영화제용 다큐멘터리(혹은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붐을 이룬 지금, 많은 평론가들이 스스로도 비평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영화를 소개하고 평문을 쓰는 경우를 곳곳에서 본다. 영화 전공자로서 께름칙하다.

다시 한 번, 음악 평론 단상 0

-http://www.huffingtonpost.kr/kwangeun…/story_b_17991102.html 이 글을 읽고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10여 년 전 웹진 가슴에서 읽어봤을 법한 대중음악평론이 돌아온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한국 힙합은 미국 힙합의 모사품이기 때문에 고유의 방법론을 통해 ‘한국적 힙합’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 리듬’과 이 글이 뭐가 다를까? 또한 이 글의 주요 논거인 국힙 고유의 세대론은 내게도 너무 익숙한 나머지,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찌르기만 해도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다.(그만큼 진부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 글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대중음악에 관한 (내게는 너무나도) 복고적인 관점이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유년 시절인 고등학생 때 나는 웹진 가슴을 싫어했다. 최근에 생각이 나서 들어가보니 사이트는 폐쇄되어 있었고, 현재는 대중음악사운드 연구소 SOUND라는 사이트로 개편되어 있다. 지금은 왜 싫어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특히 박준흠 음악 평론가를 싫어했던 걸로 기억한다. 박준흠이 가지고 있는 실력에 비해 그에게 과도한 권위가 주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반감을 부추기는 데에는 한겨레에서 주최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선정하는 데 박준흠이 꼬박꼬박 참여하는 모습도 한몫 했을 것이다. 나는 박준흠이 ‘진정성’ ‘저항’이라는 기준을 부르짖으며, 한국대중음악의 정전을 골라내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아 했다. 
반대로 신현준 음악 평론가에 대한 나의 마음은 각별했다. 10대의 내게 신현준(혹은 웨이브)과 듀나가 끼친 영향은 남달랐다. 웨이브에 실렸던 ‘짐 오루크와 인디 록의 젠체하기(JIM O’ROURKE AND INDIE ROCK SNOBBERY)‘와 듀나의 ’스노비즘‘에 관한 글은 특히나 그렇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2005년에 출간된 <한국 팝의 고고학>을 발견하고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신중현과 산울림은, 내가 유년 시절을 회고할 때 맨 첫 번째로 생각나는 음악이다. 사랑과 평화, 정성조와 메신저스나 데빌스. 그 때의 영향이 내게 크게 남아 있다. 그 외에도 필드 레코드나 한상철씨의 블로그가 있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2002년도에 신중현 작품집이 복각/발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소울식을 열심히 할 때에는 신중현 전집이 돌았었다. 마찬가지로 한국 100대 명반도 ‘한국 100대 명반’이라는 폴더명을 단 채로 인터넷에 공유되었다. 2008년에는 산울림 박스셋이 나왔다. 그리고 그 때를 전후로 한국 인디 록에 레트로(?)한 흐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네눈박이나무밑쑤시기’같은 밴드는 신중현을, ‘그림자 궁전’,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눈뜨고 코베인’은 산울림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2007년에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더 사운드 오브 서울’이라는 믹스를 <유열의 음악 앨범> 라디오에서 발표했다. 
이와 같은 모종의 흐름은 신현준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신현준은 70년대 유신 체제 한국에서의 대중음악에 청년 문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청년 문화는 유쓰 컬쳐를 문자 그대로 로컬라이즈화한 결과물이었다. 이런 관점을 암암리에 제공한 건 신현준이었다. 그는 한국대중음악 자체를 로컬라이즈의 산물로 보고, 사이키델리과 펑크의 흔적을 각각 신중현과 산울림에서 찾는다. 제3세계가 미국의 팝음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연한 성취를 발견하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서구적 중심과 그 주변(로컬)을 가르고 고급 문화와 하위 문화를 분리하는 관점이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효가 다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이 ‘문화적’ 관점이 운동권이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중문화를 진지전이 일어나는 장소로 간주했던 것과 유관하다고 본다. 이 관점은 ‘얼트 문화와 록음악’에서부터 우원재와 로컬라이즈까지 장장 20여년 동안 이어져 왔다. '문화'가 지금까지 생존한 건 나름대로 대단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글을 읽어야 할까.

-지금 신현준 평론가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최근 몇 년간 홍대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지고 이슈 파이팅을 한 듯 하다.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수순이다. 결국 로컬리티를 강조하는 신현준으로서 홍대 젠트리피케이션은 가장 중요한 논제일 수밖에 없다. 자생적으로 성립한 우리 문화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반대편에 K팝을 가지고 문화 분석을 하는 아이즈, 아이돌로지 필자들이 있다. 나는 이 또한 거북하게 생각한다. 쟁점도 없고 별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문화 산업으로 K팝을 분석하거나, K팝에 압축되어 있는 평평한 음악 양식들에 감탄하는 K팝 비평들은 인디 록 비평을 전도한 것에 가깝다고 본다. 냉소와 진정성이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말이다.

-'문화', '인디', '독립' 모두 마찬가지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 유효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평은 이런 개념을 전제하려고 한다. 결국 사악한 386이 만든 프레임이, 내가 대중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부인 것일까?






전면적인 압박은 정치적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잘못된 방침이다 0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번역해 봤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런저런 번역들이 있긴 하나, 번역한 게 아까워서 그냥 업로드한다. 


10년 전 이슬람 정당들은 중동에서 막을 수 없는 힘이었다. 2011년 아랍의 봉기 때 독재자들은 흔들렸고 무슬림 형제단과 그 후계자들은 영향력을 얻었으며 통제력을 획득했다. 모스크와 투표함은 궁전과 병영, 힘의 근원으로서 비밀경찰을 대체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랍세계의 잔해 속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민주주의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념은, 부서졌다. 이슬람 정당들은 반동적 체제로서 새로운 것을 억눌렀고 폭력적인 지하디스트와 그들이 실패했다는 의심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투표자들로 인해 도전받았다. 대부분은 투옥되거나 추방됐다. 그들의 자금주, 카타르는 트럼프가 지지하는 주변 아랍국가들의 외교적이고 경제적인 외면에 종속되고 말았다.

이슬람 단체는 여러 형태로 파생됐다. 나흐다 당부터, 무슬림 민주주의자라고 자칭하는 튀니지인이 있고, 팔레스타인에는 이슬람 자살 폭탄를 보내는 하마스가 있다. 이렇게 나타나는 단체들은 모두 3가지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비민주적이다. 그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은 모두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독재자에 문제해결을 이관한다.

성찰로부터 출발하자. 정치 평론가들은 정치적 이슬람주의자들이 알카에다나 IS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두 종류의 이슬람 모두 샤리아 하의 이슬람 칼리프 제를 재창안하려고 했다. 최악은 정치적 이슬람이 폭력적인 지하드의 입구라는 점이다.

형제단은 부분적으로 구별을 흐리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형제단의 지도자들은 영어로 비폭력을 설교하고,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아랍세계의 성전과 저항을 찬양한다. 이와 비슷하게 이집트 정부에 저항하는 폭력은 형제단의 작품으로 나타난다.

이 모든 그룹이 뭉치게 되는 것은 간단하다. 폭력적인 지하디스트들은 유혈 행위를 정당화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청교도적인 살라피즘조차 예외는 아니다. 지하디스트들은 연민, SNS, 선거에 집중하는 온건파 이슬람주의자를 혐오한다. 그들은 인간의 법보다 성스러운 법이 우선한다고 본다.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심지어 비폭력적인 이슬람주의자조차도 선거를 전략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터키의 대통령인 에드로안은 이슬람주의자의 모델이었는데 그는 독실했고 또 개혁에 개방적이었다. 요즘에 그는 현실과 가상의 적 모두를 몰아내고 아랍세계의 최악의 지도자가 되었다. 평론가는 에드로안과 무르시 모두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슬람주의자이기 떄문이다. 그러나 거기엔 또 다른 설명이 있다. 그들은 터키와 이집트의 독재자가 건력을 돌려받기 위해 사용했던 계엄령이라는 권력 획득 전략을 활용한다.

희망적인 예는 아랍의 봄이 시작한 튀니지에 있다. 그 곳은 리비아의 시민전쟁과 이집트와 알제리의 비밀경찰 모두를 피할 수 있었다. 나흐다 당은 권력을 더욱 세속적인 이들과 나눌만한 상식이 있었다. 이는 나약한 민주적 번역이 더 큰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모로코에서 왕은 권력을 의회에 이양했고 이슬람 수상이 연정을 구성하는 것을 인정했다.

세 번째 오류로 생각할 만한 것은 국가로 하여금 절대왕정과 종신 대통령제에 의존하게 하는 정치적 이슬람의 결점이다. 그들의 기록은 심각하다. 1979년의 혁명을 촉발시킨 샤의 철권통치부터, 이라크에서의 사담 후세인의 공포정치, 1992년 알제리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의 선거 승리를 뒤집은 쿠데타, 시라아의 알사드 정부까지, 억압은 최선의 결과로 부서지기 쉬운 안전성과 최악의 결과로 시민전쟁을 안겨줬다. 남한과 대만과는 다르게 중동의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지속적인 번영을 낳는 데 실패헀다.

 

시시도 아니고 IS도 아닌


무르시의 정부를 전복한 지 4년 후에, 그는 그 자신이 축출한 시시보다 더 최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현재 대통령은 현대 이집트 사에서 최악의 대량 학살을 자행했고, 2013년에는 무르시의 지지자 1300여명을 학살했다. 국가는 무라바크 때보다 더 억압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지하디스트 폭동은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시시는 이집트의 늘어나는 청년 인구를 위해 창조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억압과 실정은 아랍 세계에 위기의 장면을 연출했다. 그들은 금방 절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재는 막다른 길에 접어들었다. 안 좋은 선택 가운데, 유일한 탈출구는 아랍의 경제와 정치를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건 폭력을 포기하고 민주적 규범을 존중하는 한에서 이데올로기가 경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은 이슬람주의자들은 포함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중동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것이 놓인 신의 장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정하는 정치학에서는, 정치적 이슬람주의자들은 매우 드물게 아랍 세계의 기독교 민주당원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실용적으로 변할 수 있고, 무시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과 부딪혀야 하는데, 연합해야 한다. 그들을 급진화하기보다는,온건파와 같이 일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아주 불쾌한 개혁을 요구할 수도 있고, 대부분의 위험과도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은 지하디즘의 통로가 아니라 그들을 막는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야 한다.      


방송인 유시민, 그리고 386 세대의 멘탈리티 4

 



방송인 유시민, 그리고 386 세대의 멘탈리티  



어용 지식인? 음모론자?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을 감안해도 최근 방송인유시민의 성공가도는 놀라울 정도다. 사실 유시민은 예전부터 방송에 몸을 직간접적으로 담아 왔었다. ‘유지수라는 가명으로 MBC 드라마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의 극본을 쓰기도 했으며 독일로 유학을 갔다온 이후에는 <100분 토론>의 사회자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또한 유시민은 어떤 정치인도 생각하지 못했던 인터넷 정당(개혁당)을 창당했을 만큼 뉴 미디어의 동향에 예민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방송을 능란하게 활용하던 유시민은 2016년을 기점으로 본격 방송인이 된다.‘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을 떠나 저술가, 방송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시민이 유독 흥미로운 이유는, 유시민이 386세대의 멘탈리티를 대변하는 동시에 386세대에 정치적 수사를 제공하는 방송인 겸 지식인으로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JTBC에서 방영되는 <썰전>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로 공전의 히트를 거뒀고 tvn에서 방영됐던 <알쓸신잡>은 전국에 알쓸신잡 신드롬을 일으켰다. 방송인으로서 유시민보다 성공한 지식인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성공을 가능케 한 조건들이 궁금했다.

일전에 JTBC 방송 <썰전>에서 유시민은, TV토론에 출연하는 정치인은 쟁점이 되는 사안에 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방송을 보고 있을 정당의 지지자에게 주장을 뒷받침할 논리를 설파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풀어 말하자면, TV 토론은 논리의 타당성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지지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예를 들면 택시 기사와의 대화나 부모와의 식사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을 법한 주장과 근거를 제공하는 미디어 이벤트다. 나는 TV토론에 대한 유시민의 발언을 듣자마자 유시민이 TV 방송에서 방송인 유시민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유시민은 대선 얼마 전에 어용 지식인을 자임하며 문재인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는데, 이는 단순히 문재인 정부에 찬동하겠다는 의사 표현이 아니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서 대중을 설득한 논리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유시민은 문재인 정부를 대변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 지지자에게 정치적 수사법과 논리 등을 설파한다. 이것은 방송인 겸 지식인 유시민의 가장 큰 성공 동력 중에 하나다.

유시민은 <썰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로 청와대에서 발표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분석하는 것으로 인터넷상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담화문 배후에 감춰져 있는 정치적 의도를 밝히는 분석가로서 유시민은 모호한 문장에서 명확한 의도를 찾아낸다. 이를테면 유시민은 16121일에 방영한 <썰전>에서 청와대 3차 담화문의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 순간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 해왔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라는 구절에서 지독한 나르시시즘과 자신은 애국자라는 확신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유시민의 분석에서 평소의 유시민이라면 절대 방기하지 않았을, 타당성을 찾기 힘들다. 다소 사이비 정신분석에 가까운 유시민의 분석은 담화문에서 정치적 의도를 찾기 보다는 박근혜 개인의 정신 구조를 파헤침으로써, 박근혜 개인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음모론에 힘을 실어준다. 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문장을 꼼꼼히 따져보고, 논리 구조를 명료하게 파악하는 유시민의 장점은 음모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 될 때가 있다.

유시민의 담화문 분석은 386세대 지식인의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유시민은 정치적 사태 배후에 어떤 음모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이 음모와 간계를 파악해서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라고 간주하는 듯하다. 1776일에 방영된 <썰전>을 보면, 유시민은원자력 발전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은 전문가 집단을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썰전>에서 유시민은 정치인 유시민의 공격성을 지식인 유시민의 합리성으로 세련되게 변주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의 명쾌한 합리성은 배후의 음모를 추궁하는 음모론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표면에 드러난 언어로는 그 뜻을 완전히 파악하기 힘들고 진의는 따로 있다는 유시민의 태도는 소위 386세대의 정치 언어의 산실인 정치 팟캐스트에서 퍼트리는 음모론과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공격하고 사회 문제의 대부분을 기득권층의 흉계 탓으로 돌리는, 일군의 정치 팟캐스트는 유시민과 논리적 친연성을 보인다. 지금까지는 386세대에 정치적 수사를 제공하는 방송인 겸 지식인으로서의 유시민의 면모에 집중했다면, 아래에서는 자연인으로서의 유시민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386세대의 멘탈리티를 살펴볼 것이다.

 

자연인유시민의 두 얼굴, 지적인 멘토 VS 저항하는 청년

 

TV방송이 유시민을 활용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그의 지적인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tvn에서 방영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은 유시민의 지적인 풍모를 최대한 강조한다. 그는 만물에 통달한 잡학 박사이자 90년대를 풍미했던 지식 소매상으로, 여행지에 관한 잡다한 지식을 시청자에게 가르쳐 준다. 이 때 유시민은 지적인 멘토가 된다. 유시민의 글쓰기 선생으로서의 면모는 <알쓸신잡>에서도 간간히 등장한다. 유희열과 같이 유적지에 방문해 지자체에서 작성한 유적 소개문을 읽다가도, 유시민은 비문을 교정한다. 명료한 글쓰기는 유시민의 최대 장점으로, 고종석은 소설 <독고준>에서 유시민의 글쓰기에 대해 “(...)인문사회과학의 다소 전문적인 지식을 일반 독자들이 흡수할 수 있을 만큼 깔끔하고 단정한 언어에 담아내는 것을 글쓰기의 큰 줄기로 삼아왔다.”고 평가한다. 단정함을 글쓰기의 최대 덕목으로 생각하는 유시민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글쓰기 선생으로 대중 앞에 선 바 있다. 유시민은 비문이나 의미가 혼잡한 문장을 용납하지 않는다. 유시민의 예리한 지성은 명료함과 합리성의 무장했고, 특히 유시민의 뛰어난 말솜씨는 그를 TV토론의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유시민이 추구하는 명료함은 주로 사실의 세부사항들을 지우거나 단정적인 주장으로 쏠리기 일쑤였다. 특히 상대방을 공격하는 유시민의 언어는 매섭기로 유명했고, 그의 독선은 유시민의 정치 이력에서 늘 문제가 됐다.

그러나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은 부드럽고 인자한 선생님으로 탈바꿈한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의 지적인 풍모가 유감없이 발휘됐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거꾸로 읽는 세계사경제학 카페같은 교양서를 통해 이미 확인됐던 유시민의 교양은 그의 능란한 말솜씨와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뿜는데, 시청자들이 <알쓸신잡>에 매혹당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테다. 그는 지식 소매상으로서 시청자들이 원할 만한 적당한 깊이의 교양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유시민이 다른 지식 소매상들과의 변별점은 지식수준, 정치인으로서의 경력, 단정한 글쓰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발휘했던 매력은 저항하는 청년이라는 운동권 서사의 아우라 덕이 컸다.

TV방송이 유시민을 활용하는 두 번째 방법은 유시민에게서 운동권 청년의 면모를 끌어내는 것이다. 유시민이 <썰전>에서 한 때 투쟁의 동지였던 친구들을 대선 주자로 만나는 장면은 시청자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필했던 안희정, 따로 또 같이 활동했던 심상정 등과 유시민이 해후하는 모습은 80년대적인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켰고 그들이 나눈 투쟁담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아직도 청년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감수성은 운동권에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386세대 전반을 포괄하는 감수성을 소년성이라고 명명한다. 허문영의 한국영화의 소년성에 대한 단상2000년대 한국 영화 평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글이다. 이 글에서 허문영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2000년대의 한국 영화에서 소년성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낸다. 허문영의 요지를 간추려 요약하자면, 2000년대 한국 영화의 주인공은 공동체를 지키는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외면당하는 영웅,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영웅이다.

한국 영화는 기존의 헐리우드 내러티브에서 볼 수 있는 공동체에 헌신하는 영웅과는 다른 주인공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의 주인공은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나약할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미성숙하다. 허문영은 소년성에 대해성공한 한국 대중 영화들에는 영웅성의 자리를 소년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 소년성이 한국 장르 영화의 불안정하며 변칙적 성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라고 설명한다. 생물학적 연령이 소년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 영화의 내러티브를 움직이게 하는 문제-해결 도식에 대한 인물의 태도가 소년성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생물학적 연령이) 성인 주인공도 내러티브 내에서 소년성을 반영할 수 있다. 허문영에 따르면 1)‘아버지의 부재’ 2)‘사라지는 여인들’ 3)‘애타게 형제애를 찾아서라는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하면, 소년성은 내러티브에서 반영된다.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은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세대 성장담을 분석하면서 소년성이라는 범주로 속하는 영화들이 60년대 생 감독들의 창작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박해천은 60년대생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성장담을 영화로 가공할 때 취하는 내러티브 구조에서 사악한 공동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소년과 공동체 간의 투쟁을 엿본다. 공동체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소년은 군부 독재와 결사 항쟁하는 386세대의 자화상이다. 소년들에게 중요한 건 아버지나 연인이 아니라, 친구다. 국문학 연구자 천정환은 386세대의 동지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 혁명가들은 겨우 스물 몇 살이었다. 하지만, 복수(複數)로서의 그들은 완벽한 인간과 이념에 충실 한 동지전사로서 서로들을 상상했다. 친구는 광주나 혹은 어딘 가에서 희생당한 존재이기도 하여, 그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죄의식)’을 지배적인 공통의 정서로 느꼈다.”

 

이러한 운동권 청년 혹은 소년의 이미지는 2000년대 대중문화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2010년대에 이르면 대중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마치 386세대의 성장담에 등장하는 주인공 같았다. 노무현은 공동체에서 추방당하고 외면당하는 영웅이었으며, 친노 정치인은 노무현의 동지이자 친구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386세대라는 소년이 성장하지 않고 멈춰버리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386 세대는 공동체에 의해 희생당한 비극적인 영웅 노무현에 대한 슬픔(=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친구가 된다.

방송인 유시민과 다른 지식인들과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유시민은 자신을 소년으로 제시할 줄 아는 지식인이다. 노정태는 은퇴한 '정치도매상', 돌아온 '지식소매상'!”이라는 글에서 유시민이 크라잉넛을 언급하는 부분을 꼬집으면서 뭔가 '젊음'을 보여주고 싶은데 아는 밴드가 크라잉넛 딱 하나니까 그 이름만 마르고 닳도록 부르게 되는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썰전>에서도 유시민은 유행가를 흥얼거리거나 유행어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유달리 젊음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시민이 TV에서 매력을 발휘할 때는 그가 노무현 대통령과 결부될 때이다. 방송인 유시민은 천정환이 말했던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다. TV에서 유시민은 공동체에 의해 핍박 받고, 동지(친구)를 잃은 소년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서 벌건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유시민의 이미지는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친구의 죽음에 통곡하는 소년 유시민. 이때 유시민이 지닌 교양과 능란한 말솜씨, 친근함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공동체와 투쟁하고, 또 배척당한 소년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근황 0




1. 오자와 마사치의 <전후 일본의 사상공간>을 읽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일본 학자들은 '전후 일본'을 폐쇄된 시공으로 그려낸다. 이를테면 가라타니 고진은 쇼와+다이쇼 60년을 통째로 묶어서 단일한 시공으로 간주하고, 이 쇼와+다이쇼가 다시금 헤이세이(1989년 이후 일본) 시대에 반복된다는, 쇼와-헤이세이 60년 주기설을 이야기한다. 오자와 마사치는 이 논변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헤이세이 시대의 당대(1998년)을 1930년대의 반복으로 위치시켜, 당대를 '전전'이라고 명명하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펼친다. 즉 60년을 주기로, 폐쇄적인 시공이 역사적 사건을 동일하게 겪는다는, (아리기를 연상케하는) 주기론이다.  일본 현대 미술을 다루는 <일본.현대.미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본을 닫힌 시공으로, 다시 말해서 시간과 공간이 무력하게 원을 그리는 '나쁜 장소'로 묘사한다. 한국을 여기에 비교해 본다. 일본에는 역사를 구조적인 운동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들이 있는 반면, 한국에는 역사를 구조체, 혹은 구조를 창출하는 운동으로 상상하는 시도들은 전무한 것 같다.(물론 1980년대와 2010년대를 상동적으로 분석한 경우는 있다) 나는 최근에 2000년대 임상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임상수를 통해 한국 사회를 추동한 힘의 궤적을 그려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임상수론을 쓰고 싶다. 

2. 우엘벡과 베르나르 앙르 레비의 서신 교환을 읽었다. 레비는 정말로 읽을 가치 없는 한심한 족속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지식인이 프랑스에도 있구나. 유시민 같다고나 할까. 사이비 지식인. 반면에 우엘벡은 뛰어나다(역시나). 파스칼의 <팡세>를 근사한 로큰롤에 비교한 대목(셀린 얘기를 하다가...)이 흥미로워서 <팡세>를 빌렸다. 문자 그대로 로큰롤이다. 수어사이드 같다. 끝내준다. 내가 왜 이걸 지금 읽었을까.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온 세상에 울려 퍼진 <시편>

누가 마호메트를 증언하는가?그 자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증거가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란다.

증인의 자격은 증인들이 항상 존재하고, 도처에 있으며, 그리고 비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다." 

3. <아메리칸 허니>를 봤다. 2시간 40분 짜리 영화인데 은근히 시간이 빨리 갔다. 예쁘게 자글자글거린다. 하모니 코린 <검모>를 로드 무비+여성 서사로 리메이크한 것 같다. 아침은 이 영화에서 제일 아름다운 시간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아침이 보고 싶었다. 푸르스름한 아침. 전역한 이후로 아침을 즐겨본 적이 없었다. 최근엔 항상 늦잠을 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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